산행담

그렇게 어렵게 살만큼 살았으면 이제 그만 몸 벗으라고 하신다. 김 중교 2011년 1월

관리자 0 5,106 2013.08.29 00:00
김 중교
어린날 동생을 잃고 삶과 죽음 등 본질적인 물음을 안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어떻고, 진리가 어떻고, 하는 몇 년 동안의 설교들이 나를 더욱더 갈급하게 하고 의증만이 휩싸여가며 회의마저 일어났다.

그래서 신약성경인 헬라어, 구약성경인 히브리어 원어를 뒤적이며 찾은 내 안의 하나님은 불법에 대해 궁금하게 하며 불교에 가서 부처님법을 알아보라고 하는 것 같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복이 아닌 정법을 찾아 원불교에 갔으나 돌아서면 뭔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몇 군데 절을 찾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수행을 해나가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가는 곳 마다 이상야릇한 현증가피, 신비한 몽중가피들의 신기한 체험들이 있었으나 그때뿐이고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새어 나오는 공허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러면서 장기를 드러내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몸은 기력을 잃어가며 신경쇠약에 걸렸다. 딸의 보호를 받기위해 2년 전 춘천에 오게 되었고 선몽과 감응으로 삼운사를 수행도량으로 삼고 다녔으나 몸은 좀 낫는가 하다가도 다시 되돌아가고 하면서 병원 입퇴원을 몇 번이나 거듭하면서 조금의 기운이 생기면 법회에 나가기도 하고 작은 봉사도 하며 기도도 했다.

그러나 몸은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져 병원에서 맞던 링거 수액도 혈관이 자꾸 파열되면서 투여 할 수가 없고, 먹지도 잠잘 수도 없이 한밤중에 강제 퇴원하니 주치의가 그렇게 해서 집에 가면 사망한다고 하였다.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를 하고 손에 든 염주를 꼭 쥐고 집에서 관세음보살님만 찾으며 힘겹게 삼운사에 가서 스님을 뵈었더니 저를 지켜보던 스님께서 보살님! “그렇게 어렵게 살만큼 살았으면 이제 그만 몸 벗으라고 하신다.

” 난 “네!” 하고 마음정리를 하고 부처님께 마지막으로, 정성을 쏟던 십우도, 심우도 그림을 공양 올렸다.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오로지 관세음보살님만 얼마나 마음속으로 불렀는지, 꽃이 피고 지는 봄날들이 얼마나 지났는지 몸의 감각이 둔하여지며 아예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상하게 의식은 점차 또렷하여지고, 쌓여 있던 의문들이 열리기 시작 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비몽사몽 중 천태역대 대조사님들과 구인사에 많은 스님들께서 공양을 하시는데 승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묶은 키가 크고 준수한 청년이 일어나시며 보살님! 공양 잘 하였습니다. 하고 합장 반배를 하신다. 눈을 번쩍뜨니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상월원각대조사님이셨다.

“나무관세음보살!” (상월대조사님은 젊은 시절 머리를 깍지 않으시고 기르셨다 함,) 그리고 마른 내 몸에서 향내가 나는 것 같은 며칠 후, 윗층 새댁이 내려와서 문을 두들기며 "이집에서 향을 피우나요?", "난 아닌데요, 왜 그러세요?" 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안했더니 "아니, 저 향내가 솔솔 나와서요." 하면서 "무슨 비밀스런 것이 있나봐요?" 하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문을 닫는다.

 난 또다시 기력이 나는 것 같았고 그럴 때 마다 삼운사로 가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목숨을 걸고 구인사 4박5일 정진을 하고 왔다. 삼운사에 발을 디딘지 1년반, 올해칠월 철야정진을 하게 되었고 하안거, 백만독 관음주송 철야정진 (가끔은 게으름도 났지만)을 마쳤다.

회향식날 주지스님께서 8정례에 대해 법문을 하실 때 알게 모르게 내리는 부처님 명훈가피력설명에 감동을 받으며, 이제는 일 할 줄 알고, 혼자서 놀 줄 알고,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관음정진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동안 나를 지켜 봐주시며 끊임없는 걱정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보살님들과, 나를 보호해주는 고마운 딸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겨 나가고 있는 나 자신과 삼운사에 깊은 감사를 올린다.

두서없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불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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