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샘

'삼생의 업장을 일시에 소멸한 머슴'

장석효 0 7,871 2007.01.03 00:00
조선조 중기에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심원사(深遠寺)의 스님은 퇴락한 법당을 중수하기 위해 천일기도를 올렸다. 기도 마지막날에 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이 현몽해서 불사에 대한 방법을 일러주셨다. 화주책을 만들어 아침에 고을로 내려가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스님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화주책을 만들어 들고 하산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아무쪼록 공덕심이 있어서 법당이 새롭게 단장될 수 있기를 축원하였다. 그 때 한 사람이 오는데 자세히 보니 고을의 대감집에 사는 떠꺼머리 머슴이었다. 스님은 마음속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여 실망하다가 어젯밤 꿈이 하도 생생한지라 머슴이지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화주책을 건네주고 돌아왔다. 스님은 책을 주고 절로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한편 화주책을 건네 받은 머슴은 신세가 박복하여 가진 것이 없어 불사에 참여하지 못함을 고민하다가, 장가갈 때 받아가기로 하고 이십여년 동안 모아놓은 새경(품삯)을 일시에 받아서 심원사에다 시주하였다. 그리고 장가가기를 포기하고 머슴살이를 계속하였다.

머슴의 선행은 고을에 널리 퍼져 나갔다. 고을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도 머슴을 위해 불상 앞에서 늘상 기도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머슴이 일하다가 실족하여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대감집에서는 일을 하지 못하는 머슴을 쫓아내었다. 스님은 난처한 지경에 빠진 머슴을 절로 데려왔다. 그러자 고을사람들은 물론이고 스님마저도 부처님의 인과법문(因果法門)과 기도의 위신력에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절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지내던 머슴이 이번에는 중풍에 걸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생명처럼 소중한 재산을 시주한 착한 사람을 위해 스님이 조석으로 기도를 아끼지 않았건만 돌아온 것이 이러한 불행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부처님의 인연법이나 가피력을 믿지 않았고 절에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또 얼마 되지 않아 머슴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는 머리통만 길바닥에 뒹굴었다. 박복해도 이렇게 박복할 수 있을까.. 스님은 도끼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가 아무런 영험도 없는 불상의 이마를 찍었다. 그리고 다시 치려고 도끼를 빼려고 하니 빠지지를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스님은 박복한 총각의 머리통을 거두어 묻어주고 그대로 절을 떠났다. 그러한 소문을 들은 고을사람들이 절로 올라와 도끼를 빼려 하였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기를 30여년.
그 고을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군수가 심원사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을 보고받고는 마음이 일어 절을 찾아갔다. 군수가 자세히 보니 거기의 도끼 끝에는 이런 글씨가 씌어 있었다. '불사(佛事)로 삼생(三生)의 인과를 한꺼번에 벗은 자가 이 도끼를 빼리라' 군수는 불상에 박힌 도끼를 잡아 뽑아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잡아당기니 도끼가 스르르 쉽게 빠지는 것이 아닌가! 군수는 물론이고 고을사람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한 생(生)은 머슴으로, 또 한 생은 불구자로, 그리고 또 한 생은 중풍으로 누워서 살다가 마침내는 호환(虎患)으로 생을 마쳐야 할, 기나긴 세월의 업장(業障)이, 두터운 불심으로 인하여 단 삼년만에 소멸되고, 이제 그 머슴이 군수로 전생하여 금의환향한 것이었다. ('우리 불교 설화' /김의숙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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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인과(因果)는 이렇게 철저합니다.
마치 거울에 사물의 모양이 있는 그대로 비치듯, 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대로 메아리쳐 돌아오듯, 그렇게 분명한 것이 인연과보(因緣果報)입니다.

내가 나쁜 업(業)을 행하였으면 괴로운 과보를 받을 것이요, 좋은 업을 행하였다면 즐거운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받을 수도 있고, 내생(來生)에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받느냐의 문제일 뿐, 받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결과를 억지로 바랄 필요도 없고, 나쁜 결과를 억지로 피해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행한 만큼 받겠다는 마음으로, 그저 지금의 행동을 올바르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어떤 업(業 행동)을 행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언제나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살피고 정화하는 데에만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는 인과를 믿기때문 입니다.

인과를 믿으면 원망과 노여움, 성내는 마음(瞋心)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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