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샘

'스님, 저 어디가서 죽을까요?'

관리자 0 7,768 2011.01.02 00:00
뇌성마비 한국화가 한경혜씨의 삶, '절을 하며 운명을 다시 쓰다'
- 22년간 하루 1,000배로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한국화가로 우뚝 선 한경혜 화백 -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신이 하루살이인데, 태어난 날이 마침 비오는 날이면 어떻게 하겠는가?"
달랑 하루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인데 하필이면 비 오는 날이라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삶을 포기해 버릴 것인가?
아니면 비록 비오는 날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즐거운 인생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주어진 환경은 하나의 조건은 될지언정 그 자체로 행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여 자신의 의지로 행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것, 바로 거기에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희망을 갖는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소망대로
아름답고 행복하게 경영해 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기에 드라마틱한 사례가 하나 있으니, 32세의 젊은 한국화가 한졍혜 화백의 삶이다.

그는 처음부터 심각한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세상에 태어났다.
사지는 뒤틀리고, 안면근육은 돌아가고, 말은 어눌한 참혹한 모습이 그가 안고 태어난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불공평한 신의 처사를 자신의 삶의 한계라고 믿지 않았다.
32년이란 그의 지난 삶은 자신에게 천형처럼 주어진 장애와 그로 인한 절망감 그리고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그는 마침내 이 모든 것을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한경혜는 1975년 1월 경주에서 태어났다.
몸무게 1.6kg의 미숙아였다. 병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에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지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채 무직자로 생활하다 술에 빠져 있었고,
제때 끼니조차 대기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다.
병원에서의 최종 판정은 뇌성마비였다.

7살 무렵,
한경혜는 심한 병을 앓는다. 고열과 함께 경기를 일으키더니 점점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뿐...
병은 점점 악화되어 물도 삼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의사는 어머니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죽어가는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집에 돌아 온 어머니는 이튿날 다시 딸을 등에 업고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 올랐다.
가는 길에 어머니가 말했다.
"경혜야, 이 세상에서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다음엔 더 좋은 세상에서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기 위해 부처님께 절이라도 실컷 해 보자...."
백련암에는 한국 불교의 큰 스승인 성철 스님이 계셨다.
그런데 성철 스님을 만나려면 누구나 먼저 삼천 배를 해야 한다.
어머니는 성철 스님에게서 마지막으로 좋은 법문이라도 듣기 위해 삼천 배를 시작했다.
어린 경혜에게도 절을 하도록 시켰다.
뇌성마비의 온전치 않은 병으로 사지가 점점 굳어가고 있던 그는 도저히 절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절을 시켰다.
온몸으로 통증이 격심했지만 경혜는 안간힘을 다해 절을 시작했다.
경혜의 절은 무려 사흘에 걸쳐 이어졌다. 죽어가는 어린 몸이 한 삼천 배...놀라운 사건이었다.
삼천 배를 마친 경혜는 몸을 질질 끌며 성철 스님 계신 곳으로 갔다.
마침 큰 스님은 마당에 나와 있었고, 경혜는 쓰러질 듯 큰 스님 앞에 엎드린 채 물어 보았다.
"스님, 저 죽는대요. 언제 죽어요?"
큰 스님이 무뚝뚝하게 한 마디 던졌다.
"오늘 저녁에 죽어라."
"그러면 스님, 저 어디가서 죽을까요?"
"너거 집에 가서 죽어라!"
"우리 집에는 돈도 없고, 어차피 죽으면 여기서 49재를 지낼텐데, 나 여기서 죽을랍니다."
여전히 울음을 쏟아놓는 경혜를 물끄러미 보시던 성철 스님이 말씀하셨다.
"야이, 가시나야. 그럼 니 오래 살아라."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그라고 하루에 천 배씩 꼭 절하거래이."
그 말이 어린 경혜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절을 올라갈 때만 해도 물도 못 삼키던 형편이었는데 삼 천배를 하고 나니 물을 마셔도 토하지 않았다.
성철 스님이 주신 바나나를 다 먹었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그날부터 그는 생존 본능 같은 의지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천 배를 올렸다.
그런 것이 어느덧 22년이다. 하루 천 배의 절은 성철 스님과의 약속이었을 뿐 아니라 삶을 향한 의지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에게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비틀어지고 흔들거리던 몸이 어느덧 제자리를 바로 찾아가고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친구들고 함께 한 체력장에서는 만 점을 받는 놀라운 변화는 신체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절을 시작한 이후 22년 동안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변화라기보다는 새로운 탄생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장애 탓인지 기억력과 이해력이 부족해 늘 하위권을 맴돌던 학교 성적이 어느때부터 놀랍게 향상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이 절의 효과라고 믿었다.
즉 절을 하면서 온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뇌로의 산소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지능이 좋아지고
이해력이 높아져 성적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사 온 서울의 학교에서도 늘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중간 생략)

대학을 졸업한 이튿날 한경혜는 만 배 백일 기도를 하기로 작심했다.
백 일 동안 하루 네 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나머지 시간은 꼬박 절을 해야 하는 힘겨운 고행.
절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운명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하루 만 배를 마치면 그는 나무 등걸이 처럼 쓰러지듯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
절을 시작한 지 40일이 지나면서 회의가 왔다.
"내가 왜 이렇게 해야 되나.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죽을듯이 절을 하고 있어야 하나."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침내 생명을 포기하기로 작정했다.
절을 시작하기 전 열 군데가 넘는 약국을 찾아다니며 모은 약이었다.
어머니에게 쓴 유서를 머리맡에 깔아놓고 그는 미련 없이 약을 삼켰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스스로 눈을 뜬다. 그리고 고통에 차서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나 살...고..싶...어. 살...려..줘."
놀라 방으로 들어온 어머니가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리고 부엌에 가 해독에 효험이 있다는 팥 삶은 물을 한 그릇 들고와 그에게 먹였다.
희한하게도 그날 어머니는 딸에게 팥죽을 먹이고 싶어 팥을 삶고 있던 참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다시 108배를 하라고 시켰다.
일곱 살 시절 성철 스님이 있는 백련암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는 형편없이 비틀거리면서 절을 했다.
그러자 굳어 있던 몸이 조금식 풀리기 시작했다.
그날도 그는 만 배를 마쳤다.
육신의 고통은 여전했고 마장이라는 환상을 보기도 하면서 그는 그렇게 힘겨운 만 배 백일기도를 마쳤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어머니가 그에게 다가와 큰 절을 했다.
그도 어머니에게 맞절을 올렸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백일기도를 마친 그에게 세상은 더 이상 전 날의 세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타고난 장애가 곧 자신에게 베푸신 부처님의 자비이자 축복이란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그동안 장애인으로서 느껴야 했던 열등감과 피해의식도 말끔히 던져버렸다.
그는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실크로드 문화기행에 참가해 9박10일 동안 실크로드를 여행했다.
그리고 2000년 12월, 역시 방송사 주관 아래 시각장애인과 함께 둘이서
히말라야 트래킹에 도전해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해발 5554m의 칼라파타르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시 두 차례나 더 만 배 백일기도를 올렸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경악스러운 초인적인 절수행이 아닐 수 없다.

그림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도 마침내 이루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
그동안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두 번의 특선과 다섯 번의 입선을 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이제는 어엿한 화가로 자신의 그림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게 되었다.
몸도 더욱 좋아져 외관으로 봐서 보통사람들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신체가 바르고 건강해 졌다.

현재.....
한경혜 화백은 경남 진영에 모녀가 함께 지은 '작가의 집'에서 작품 활동과 아이들 교육,
이곳을 찾는 내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전통문화 체험 지도에 눈코 뜰새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경혜 화백은
이 놀라운 변화와 축복을 가져온 것이 바로 절이라고 생각한다.
22년간 쉬지 않고 절을 해 온 자신의 정성과 이를 가상하게 받아들여주신 부처님의 자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숨은그림찾기처럼 자신의 삶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믿는 한경혜 화백은
앞으로 자신의 삶의 갈피에 숨어 있을 행복을 발견할 희망에 늘 들떠 있다.

- from http://stonesmile.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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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自力)이란 자기가 의식하여 자기가 노력하는 것이고,
타력(他力)이란 자기가 하는 노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데 작용된다.
타력은 자력을 다 했을 때 생긴다.

궁하면 통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의식하여 노력의 극점에 이르면 이젠 더 할 수 없다는 데에 이르게 된다.
여기를 돌파하는, 즉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일보 더 내딛는다고나 할까,
하여간 한걸음을 더 내딛으면 거기에 별천지가 전개된다.
거기에 자기가 의식하지 않았던 힘이 작용하게 된다.
이것을 선가에서 대사일번(大死一番)이라고 한다.

이것을 심리학의 입장에서 말하면 역시 심리적 경험이므로
그 지적 입장에서는 다를지언정 경험의 사실로는 같은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의식하(意識下)의 정신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스즈끼 다이세쓰 선사 '선심초심' 중에서]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久卽生 (주역)
막히면 변해야 한다.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지속될 수 있어 살 수 있다.
(무조건 통하는 게 아니라 변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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