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단 및 삼운사 소식

개성에서 만난 '아리랑 봉사소' 여성들

관리자 0 6,081 2004.03.20 00:00
DMZ 남쪽 우리측 통문을 통과하며, "저 옆 산 너머가 바로 나의 군생활 추억이 깃든
곳인데…." 과거의 상념에 빠져든다.

어느 휴일 날, 진달래꽃 만발한 부대 앞 산에 올라, 북녘 땅을 바라보며 "저곳에도
내 또래의 아이가 이곳을 보고 있을 텐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하기도 했
던 시절이었다. 군 생활의 추억에 잠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우리 측 차량행렬은
북측 통문에 도착하고 있다.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 지원을 위해 천태종에서 마련한
기와를 싣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

북측 군인들과 세관원들의 검사가 이어진다. 우리측 천태종에서 마련한 선물들에 관
심을 갖고 하나하나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 '자기들에게 줄 선물인데, 더욱이 지원
물품을 수송하는 대표단의 물품인데 선물의 포장지를 찢다니.' 마음이 언짢다.

"세관원 선생의 충실한 업무자세는 이해가 가지만, 우리 측 대표단장 스님이 북측
영통사 관계자들에게 줄 선물인데 뭐 그리 세밀하게 조사 하는가"하는 내 말에 계면
쩍은 표정을 짓는다. 선물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표정, 갖고 싶어 하는 마음
등을 읽을 수 있겠다.

개성공단 1단계 부지가 바로 저기란다. 넓게 펼쳐진 논과 산을 바라보며 남북의 노
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공단사업이 정말 잘 돼가고 있습네까?"
"정말 금년내에 남조선 기업이 입주할 수가 있습네까?"
희망과 우려의 목소리다.

6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상황을 설명하며 먼저 공단 인근 지역의 경제적 혜택과 富
의 맛을 설명하자 들뜬 모습으로 연속해서 질문을 퍼붓는다.

점심시간, 대한통운 측에서 준비한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북측 안내원들과 자리를 같
이한다. 예의를 갖춘 절제된 자세로 식사를 하지만 남쪽의 도시락에 관심이 많다.



"벤또와 도시락의 차이가 뭡네까?" 손님들의 점심식사를 자신들이 준비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도 읽을 수가 있겠다.

기와의 하적작업은 2시간 반 만에 끝난다. 지게차의 위력과 숙련된 기사의 작업동작
에 경탄하는 모습이다. 약속된 MDL통과시간은 4시 반,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갑자기 마이크로버스가 다가온다. 대한통운 기사의 말이 매대 판매를 위해 오는 아
가씨들이란다. 2평 남짓 좁은 컨테이너에 차려진 매대 위에 술, 우황청심환, 버섯
등 남쪽 분들이 선호하는 물건이 전시돼 있다.

18명의 대한통운 기사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평양의 '아리랑 봉사소'에서 5명이 왔단
다.(여성판매원2, 책임여성1, 남자1, 기사1)

여기가 남대문시장인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판매하는 여성들의 열의가 보통이 아
니다. 모든 물건이 최고란다.

판매여성들의 미모는 그야말로 '얼짱'이다. 그 때문인지 기사들이 가지고 간 달러가
금방 동이 난다. 그러자 외상판매에 들어간다.
"아니 이 기사분들이 다음에 안 오면 어쩔려고." 내 질문에 하는 대답이 "우리는 믿
습니다."였다.

위에서는 불신이지만 아래에서는 이미 신뢰가 구축되어 가는구나 생각하니, 야릇한
웃음이 나온다.

갑자기 판매원이 캡슐에 든 약을 꺼낸다. '네오 비아그라'. 설명서를 읽어보니 부작
용이 거의 없고 효과는 기존 비아그라의 2배 이상이란다. 가격은 1곽에 60불, 3개의
캡슐이 들어있다.

한 트럭기사가,"시험적으로 한 번 사용해본 후에 효과가 있으면 많이 사겠다. 한 개
만 서비스로 먼저 주어봐라"라는 말에,"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습네다. 집에 가서 사
용하시라요."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신있게 대답한다.

아가씨동무도 사용해 보았냐는 질문에,"처녀에게 그딴 말하면 어떡합네까?" 웃으면
서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달러를 벌기 위해 비아그라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못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

"고난의 행군을 하며 우리는 자신감을 얻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가
있다." 북측 안내원의 말이다. 그런데 그의 눈빛이나 목소리에는 별로 자신감이 없
어 보인다. 남쪽사정에 대해 오히려 궁금한 것이 더 많다.

몇 시간이지만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통일이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
을 해본다.

헤어지는 순간 나를 붙잡으며 "이 선생님은 참 푸근하고 좋습네다. 꼭 다시 만납세
다."하는 인사말에, 정말 내가 푸근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 남쪽 식구들 모
두의 마음은 어떠한지,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얼른 차에 올랐다.

03/02 [통일부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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