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분(盂蘭盆)'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인 울람바나(ullambana)라는 말을음에 맞는 한자로 적어놓은 것입니다. 울람바나는
아발람바(avalamba)에서 유래한 말로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에 한자로는 도현(倒懸), 혹은 그 상태에서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구도현(救倒懸)이나 해도현(解倒懸)으로 적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와 연관된 행사는 보통 우란분회(盂蘭盆會)라고 불립니다.
모든 불가의 행사가 모두 경전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듯이 우란분회도 우란분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신통 제일인 목련존자가 생전에 탐욕과 죄업으로 인해 아귀도에서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모친을 보고 부처님께 구원의 방법을 구하고자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 자자(自恣)의 날에 오미(五味: 단맛,신맛,쓴맛,짠맛,매운맛을 말하며 여기서는 모든 음식을 말함),백과(百果: 온갖 과일과 음식)의 온갖 맛있는 음식(백중이 한자로 백종 百種이라고도 표현되는 것은 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을 준비하여 분(盆:쟁반)에 담아 많은 수행자들에게 공양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마침내 목련존자가 부처님 일러주신 방법대로 대중 스님께 공양하자 그 공덕에 의해 목련존자의 모친은 물론 지옥에서 고통받던 모든 중생이 다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목련존자의 인연설화를 통해 참된 효행을 가르치고 있는 경전입니다. 이처럼 우란분회는 목련존자의 지극한 효성과 수행자에 대한 공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이 우란분회가 설행(設行)되었던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도에서는 지옥에 떨어진 부모를 공양하면 자신의 사후에 그 일체의 공덕을 받는다는 속신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중국에서의 효친사상과 만나면서 우란분회가 돌아가신 부모의 천도법회로서 발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 우란분경을 가장 먼저 번역한 것은 서진의 축법호 스님입니다. 또 남북조 시대에도 우란분회가 설행된 것은 중국의 대표적 세시풍속 기록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등의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우란분회가 가장 성행했던 것은 저 고구려와의 싸움으로 유명한 당나라에서였습니다. 당나라 고종 때 펴낸 <<법원주림(法苑珠林>>이란 책의 <헌불부(獻佛部)>에 보면 우란분회에서 스님들께 바칠 시물(施物)에 대한 문답이 나오고, 이어 매년 국가에서 우란분회를 위해 공양물과 노래하는 악인(樂人)을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공양물은 각종 진귀한 음식과 기기묘묘하고 세밀하게 가공한 장식물들로서 그 성대함이 대단한 구경거리였다고 합니다. 부처님과 승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이 우란분회는 중국에서는 선망부모의 추선공양을 중심으로 하는 행사로 바뀌었으며, 때로는 중국의 민속명절인 중원(7월 15일)의 각종 놀이와 결합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상숭배의 관념이 성했던 중국에서 우란분회가 조상천도일로 성격이 바뀐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나, 민속명절과 결합하여 각종 진기하고 특이한 물건이나 장식물을 진열해놓고 백가지 놀이(百戱)를 놀았다는 등의 기록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대개 불교의 역사를 연구하는 분들은 당나라 시절 이처럼 좋은 뜻을 가진 불교법회가 민속과 결합한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불교의례가 비속화하거나 세속화한 것으로 못마땅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이처럼 우란분절이 조상숭배의식이나 민속과 결합한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일본에서는 우란분회가 7월 13일에서 16일 사이에 조상을 맞이하여 기쁘게 해드리는 민속명절로서 정착되어 있으며, 보통 그냥 본(盆), 혹은 오본(お盆)으로 줄여서 불려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 우란분경이 언제 전해졌고, 우란분회가 언제부터 설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으로는 주로 왕실의 불교행사를 많이 기록한 고려사에 의해 예종(2회), 의종(1회), 충렬왕(3회), 충선왕(1회), 공민왕(1회) 등 10회 이내의 우란분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같이 재를 지낸 절차나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민간에서도 우란분재가 설행되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란분재가 성행한 것은 오히려 불교가 억압당하던 조선시대였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에 성리학과 주자가례의 도입으로 이전에 비해 조상숭배가 크게 발전했고, 더구나 유학자들에 의해 불교가 조상을 모르는 종교로, 한마디로 환부역조(換父易祖), 즉 부모와 조상을 모른 채 자손을 끊는 종교로 매도되고 있던 상황으로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조선시대의 스님들은 유학자들의 비난에 맞서서 불교 경전 중 조상숭배를 강조하는 데 가장 알맞은 우란분경을 많이 펴내어 보급하는 한편 유교의 오륜행실도 등과 유사한 우란분경변상도(變相圖)를 대거 보급하는 등 불교의 효행사상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우란분재가 크게 성행했던 것은 중국에서 중원(中元)과 우란분회가 결합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즉 7월 15일이라는 백중과의 시기적 일치를 들 수 있습니다. 백중은 민간에서 고된 농사를 끝내고 벌이는 칠월의 세시명절로 세벌김매기인 만두레를 끝낸 다음 벌이는 농민과 머슴들의 대동굿으로서 봉건제 시절 농촌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최대의 축제일이었습니다. 김매기가 끝나는 백중이면 농민들은 그동안 잡초를 없애던 호미를 깨끗이 씻어 농청에 보관하고 신명나는 한판 축제를 벌였습니다. 백중은 한자로는 세서연(洗鋤宴), 즉 호미를 씻는 축제 등으로 적었는데, 이는 호미씻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또 이 백중은 농민들이 힘든 농사를 마무리짓고 발 뒤꿈치를 께끗이 씻는다 하여 백종(白踵)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불교에서도 이 백중을 큰 명절로 쳤는데, 우란분절의 조상천도와 연관시키면서 백가지 음식(百種)을 마련하여 고통 속에 빠져 있는 넋을 구제한다고 하여 백종(魄縱)이라고 불렀으며, 또는 스님들이 하안거를 마치고 그 결과를 대중 앞에 고백하는 날이라 하여 백중(百衆)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스님들의 수행을 기림으로써 크나큰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옛 조상들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이나 햇곡식을 들고 사찰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고 조상님 천도를 위해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민간의 백중과 불가의 우란분절이 명칭에서도 뒤섞이고, 실제로도 함께 행사가 치루어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칠월칠석에 입제하여 백중에 회향하거나 아니면 사십구재의 예에 따라 49일 동안 기도한 다음 7월 보름에 회향하고 있습니다. 이중 칠월의 민간명절에 따라 법회와 행사의 일정을 잡는 것은 민간의 풍습을 존중하면서 그를 불교의 의식체계 내에 수용했던 오랜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만 오늘날에는 조선시대와 같은 농경생활이 거의 소멸했기 때문에 오히려 조상천도제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란분절의 본디 뜻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란분절은 단순히 조상 천도만을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조상님 천도를 위한 자손의, 산사람들의 지극한 정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에 대한 존경과 공양이라는 자세와 과정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목련존자에게 어머님 구원의 방도를 일러 주실 때 이를 특별히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란분절 행사의 참뜻을 아는 불자라면 다음과 같은 자세와 실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조상님 천도를 부처님 전에 기원하는 정성만큼 살아 계신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고 효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조상님의 천도도 중요하지만 무릇 산사람의 생명만큼 존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의 많은 노인들이 자식에게 버림받거나, 아니면 억지 효도나 겉치레 과시용 효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버림받은 노인들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완벽한 시설을 갖춰 편안히 생을 마감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지만, 이에 앞서 집안에서조차 자손들에게 소외받고 있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형식적으로나 겉치레로 남의 눈이 두려워 억지 효도를 하는 분들은 계시지 않은지 속으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란분절에 자기 조상님의 천도만을 맹목적으로 기원하는 것은 아닌지 되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조상님을 잘 모시면 자기 자손들이 복락을 누리리라는 기대를 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인간사 대부분의 행동이 결국은 자신과 자손의 복락과 번영을 위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보다 넓은 의미의 조상님들, 즉 오늘날 우리가 여기 이 터전에서 편안히 살 수 있도록 애쓰셨던 모든 선조들과 애국열사들에게도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만이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은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헌신하며, 주변의 아픔에 동참하여 같이 고락을 나누는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7월 보름 우란분절에는 민족문화의 앞날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보아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란분절은 바로 백중이고, 백중은 농경민족인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중의 하나로서 민족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부상조하던 품앗이와 두레의 협동정신과 이를 신명나게 뒷받침하던 풍물과 춤과 덕담과 예술이 모두 이에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러한 우리민족 고유의 놀이와 예술이 모두 다 문화재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그 문화를 창조했던 정신까지 보존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밀듯이 들어와 우리의 삶과 정신을 혼란시키는 외래의 상업주의 문화에 맞서 우리의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외래문화나 상업주의 문화조차 보다 넓은 품으로 끌어 안으면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조상님 천도를 위한 기도를 회향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올바른 길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작은 것 하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끝으로 우린분절, 백중을 맞이하여 모든 불자님들이 목련존자와 같이 지극한 효행원력을 세우시길 바라며 각 가정마다 불심과 효심이 넘쳐 패륜과 부도덕이 팽배해져가는 이 사회를 밝고 건강한 사회로 바꿀 수 있기를 부처님전에 두손모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